케이팝K-POP의 시작 그리고 역사
한류열풍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케이팝과 한국 아이돌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케이팝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는지, 언제부터였는지 그 이후로 어떻게 발전 되어왔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케이팝이 시작되던 때, 1960년대
1980년대 이전까지 한국의 대중음악은 팝Pop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1960년대는 트로트 장르를 제외하고 패티 김, 현미, 윤복희, 신중현 등 미군 제8군에서 공연 활동을 하던 이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POP의 영향을 받은 노래들이 주를 이루었다. 미군 제8군은 엄격한 오디션를 치루고 활동하는 가수들을 등급제로 관리했기 때문에 8군에서 공연하는 가수들은 실력이 인정되는 대표적인 가수들이었다. 조용필도 제8군 쇼단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을 정도. 이 때만해도 대중음악의 주 소비층은 한국 대중보다는 미군 제8군이었다.
한국은 1960년대까지 전쟁 직후 경제력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음반을 구입하거나 공연을 보러 가는 소비자들이 30대 이상이었다. 그래서 당시 한국의 대중 음악은 전반적으로 30대 이상의 연령층을 타겟팅하고 있다.
2. 또 다른 문화의 발전 197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20대의 대학생들이 새로운 소비자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통기타와 통이 큰 청바지 미니스커트로 대표되는 청년 문화가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록 음악의 태동기를 맞았고, 대중음악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의 대활약, 미국과 유럽 음악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과 쎄시봉과 같은 포크 뮤직 장르의 가수들이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토대가 되어 발전하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하지만 70년대의 대중문화는 10월 유신부터 전두환 정권 전까지 검열과 억압 하에 창작 활동에 많은 규제와 탄압이 있었다.
3. 한국형 발라드가 자리잡은 1980년대
1980년 대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한국형 블루스라고 불리는 한국형 발라드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한국형 발라드의 기본 틀을 완성한 대표적인 인물은 이문세 히트곡의 대다수를 만든 이영훈과 가수 유재하이다. 그 들의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80년대는 세계적인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부터 뉴 키즈 온 더 블록까지 영미의 팝의 영향을 크게 받긴 했지만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외국 음악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록 음악을 기반으로 하던 조용필을 시작으로 송골매, 부활, 시나위, 들국화, 백두산 같은 밴드들이 한국에 록 음악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조용필이나 들국화, 송골매는 록 위주의 음악이지만 1970년대의 선배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아 포크와 다른 장르의 성격을 띄기도 하는 다양한 형식의 밴드 음악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부활, 시나위, 백두산은 신대철, 김태원, 김도균, 소위 대한민국 3대 기타리스트라고 불리던 이들이 만든 밴드인데, 영국의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등의 하드 록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부활은 웅장한 밴드사운드에 발라드를 접목하였고, 시나위나 백두산은 헤비메탈을 연주해 한국 록 음악 활성화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경제 발전에 힘입어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가수들의 음반을 구입하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10대가 새로운 소비자로 등장했다. 그 후로 이들을 겨냥한 상품이 쏟아지게 되고 198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댄스 음악이 나오게 된다. 이 같은분위기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K-POP의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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